월천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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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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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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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천 조목선생이 후진 양성을 하던 곳, 월천서당 *
월천서당은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 선생이 중종(中宗) 34년(1539)에 건립하여 후진(後進)을 양성하고 수학(修學)하던 곳이다. 현판(懸板)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썼다.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단층 와가로 중앙에는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에 통간방(通間房)을 배치한 홑처마집이다. 1590년에 개수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기둥은 방주이며 흘림을 두고 그에 따라 벽선이 그렝이가 되었다. 어간 대청 전면의 문얼굴에는 당판문이 달렸는데, 중반과 하반에 널빤지를 끼우고 윗부분엔 넉살무늬를 구성하였다. 이는 쉽게 볼 수 없는 고형에 속한다. 대청의 좌측 방 북벽에 감실(龕室)이 고미다락처럼 구성되어 신위(神位)를 봉안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가난한 선비의 가묘 형태이다. *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 선생 * 조목 선생은 퇴계 선생의 제자로 명종(明宗) 7년(1552)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고,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이르렀다. 선생은 진작부터 벼슬에 뜻이 없어 45차례에 걸쳐 배명(拜命)이 내렸으나 대부분은 나가지 않아 40여 년동안 실제 봉직한 기간은 4년 남짓할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義兵)을 모집, 동생과 두 아들로 더불어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공과 합세(合勢)하여 국난극복(國難克服)을 앞장섰던 분이다. 퇴계 선생의 제자 가운데 광해군(光海君) 7년(1615) 유일하게 도산서원(陶山書院) 상덕사(尙德祠)에 종향(從享)되었다. [문화재 정보] - 규모 : 수량 : 1동 (374㎡) - 시대 : 조선시대 - 문화재 지정여부 : 경상북도 기념물(1982.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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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날 | - | 개장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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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안내 | 체험가능연령 | - | |||||
이용시간 | 문의및안내 | 054-852-6800 | |||||
유산구분 | 수용인원 | - | |||||
주차시설 | 이용시기 | - | |||||
유모차대여 | 없음 | 애완동물동반 | 없음 | ||||
신용카드 | 없음 | 출처 | 한국관광공사 |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월천길 4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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