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음모론[횡설수설/김선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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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 새벽(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주 주도 내슈빌에서 캠핑용 차량이 폭발했다. 시내 한복판이 화염에 휩싸이고, 차에 타고 있던 용의자는 숨졌다.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 건물 앞이었다. 이 폭발로 테네시와 인근까지 통신이 마비됐다가 겨우 복구됐다. 인명 피해가 거의 없어 테러 시도는 아닌 듯했다.

▷당국은 이 차량의 주인인 앤서니 퀸 워너(63)가 자폭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정보기술(IT) 업계 기술직이었던 그가 5세대(G) 이동통신 음모론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 들어 5G 기지국에 대한 방화 시도가 꾸준히 이어져 왔던 이 지역에서는 통신사 습격을 노리는 모방 범죄가 잇따를까 경계 태세다.

▷이 음모론은 5G 통신망이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통신탑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이 기술이 우리 일상을 감시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음모론을 낳고 키운 건 8할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올해 1월 트위터에는 “중국 우한에 5G 기지국이 5000개 이상 있고 2021년까지 5만 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코로나19는 단순한 질병일까, 아니면 5G와 관련돼 있을까”란 글이 등장했다. 이 음모론 추종자들이 많은 유럽은 4, 5월 그야말로 ‘불타는 봄’을 보냈다. SNS에서 대동단결한 이들이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통신탑을 불 질렀다. 폐허가 된 현장에는 ‘5G를 중단하라’는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음모론에 대해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라고 일축한다. 각국 정부와 관련 기업들도 나서서 가짜 뉴스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추종자들은 귀를 닫는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들의 믿음을 강화한다. 여기에 대중스타와 인플루언서까지 가세하면 그 폭발력은 괴물처럼 커진다. 미국의 한 정보통신업계 분석가는 “워너 씨가 정말로 ‘5G가 날 감시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내 치아에 송수신 칩을 넣었다’는 전형적 편집증의 2020년 버전”이라고 말했다.

▷SNS 세상에서는 스스로 설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세상을 본다. 가족과 친구가 하는 말이라면 경계의 시선도 거둬버린다. 정파적 사안에서는 집단 광기가 차량을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오른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날개를 단 ‘카더라 통신’은 정교한 팩트 체크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미 대중의 뇌와 마음에 박힌 가짜 뉴스는 빼내기가 어렵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누구나 ‘차에서 자폭한 테네시의 워너 씨’가 되지 말란 법이 없어 무섭고 슬프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크리스마스#새벽#5g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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