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차준철 논설위원

산 넘고 물 건너 한참을 지나갔는데 도로 제자리다. 코로나19를 다 함께 겪은 2020년이 그렇다.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후 2월 1차 대유행, 5월 연휴 고비 넘긴 뒤 8월 이후 가을 2차 대유행. 그리고 연말인 지금, 역대 최다 확진자·사망자 수치를 연일 갈아치우는 겨울 3차 대유행에 직면해 있다.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왔는데 코로나19는 여전하다.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무섭게 세상을 휩쓸고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두려운 점은 2020년과 똑같은 1년이 2021년에도 되풀이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도돌이표의 출발선에 다시 선 느낌이다. 모두 안간힘을 다해 코로나19 고통을 견디고 버티면서 이 몹쓸 감염병이 사라질 날을 고대했던 희망이 저만치 달아난 것이라 허망하다. 이제는 섣불리 코로나19 종식을 말하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초기 단계일 뿐이다.

달라진 변수가 있다면 백신이다. 미국·유럽 등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식의 열쇠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확신은 시기상조다. 전 세계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지금까지 17억5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를 기부한 빌 게이츠는 최근 “미국 내 백신 접종 비율이 높지 않으면 2022년 초에도 바이러스 재유입 위험이 있을 것”이라며 “사태를 잘 관리해야 12~18개월 후쯤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제야 내년 백신 도입 세부방안을 논의 중인 한국은 정상 복귀 시기를 일러야 2022년 이후로 바라봐야 할 형편이다.

지난 1년의 코로나19는 세상 사람을 세 부류로 명확히 나눴다고 한다. 감염 가능자, 감염자, 회복자다. 섬뜩한 말이다. 코로나19는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감염 위협을 드리우며 일상을 뒤집고 앗아갔다. 고립과 단절의 고통을 안기며 생계와 주거를 겁박했다. 코로나19 위력에 맞서 맨 앞에서 싸울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급격히 죽음으로 내몰렸다. 누구도 예측 못한 대재난이 닥쳤고, 누구도 원치 않던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2021년은 2020년보다 나아질 것인가. 예측 불가다. 이제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잘나게 예측해도 빗나갈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예측한 사람이 누가 있었나. 코로나19는 지금이 예측의 시대가 아님을 일깨웠다. 지금은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애매모호한 게 특징인 시대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또 1년, 그 이후도 속수무책으로 코로나19에 휩싸여 있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어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지 똑똑히 살펴봐야 한다. 일본 작가 야마구치 슈는 정답 말고 문제를 찾으라고 했다. 또 미래를 예측 말고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코로나19는 일방적으로 고통만 가한 건 아니다. 마치 불시에 점검 나온 것처럼, 기존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사회·권력 시스템에 충격을 던지며 얽히고 꼬인 그 민낯을 드러내게 했다.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함을 낱낱이 알렸다. 국가 방역 체계는 물론이고 사회 안전망과 교육·산업·문화·종교 등 전 영역에서 부실한 구조가 노출됐다. 가짜뉴스로 통칭되는 허위·조작 정보가 횡행해 사회 혼란이 야기되는 장면도 목격됐다. 매사 적절한 타이밍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격리와 고립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시민들은 역설적으로 연대와 연결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사회·국가뿐 아니라 전 인류와 지구까지도 공존해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확산한 것 또한 큰 수확이다. 코로나19 시기에 기후위기 관련 캠페인과 친환경 일상 실천 사례가 부쩍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환위리(以患爲利). 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말과 같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말은 스포츠 경기에 통용되는 속설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어지간히 잘 맞는다. 위기를 뿌리치면 사기와 집중력이 올라 곧바로 좋은 기회를 엮어내는 상례로 풀이할 수 있다. 지금의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위기라고 하니 주저앉아 절망과 불행에 매몰될 게 아니라, 어제의 팬데믹이 낳은 긍정적인 변화를 찾아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코로나 위기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언젠간 잘 풀리려니 방심하거나 어설픈 예측만 할 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고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과 사회, 국가가 위기 때마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어제의 코로나19는 오늘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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