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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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2 06:08
지역/호선 | /19880728 | 관리공사 | 7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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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926-4069 | 영어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5가 157번지 | ||||
중국어 | - | 일본어 | 190 | ||||
도로명 | - | 지번 |
성북구 안암동5가 157번지의 안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개운사(開運寺)는 한국 근ㆍ현대 불교사의 전개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도량의 규모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불교개혁의 근원지'라든가 '불교 교육의 근본도량'이라는 수식어가 이런한 개운사의 비중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1981년부터 중앙승가대학의 교육장으로 정착되면서 개운사는 미래의 한국 불교를 이끌어 나갈 인재양성의 산실로 기대를 받고 있다.
개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1396년(조선 태조5년) 무학대사가 영도사(永導寺)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개운사의 전신이라는 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즉 무학대사가 도성 동쪽 5리쯤에 영도사를 창건한 후, 1779년(정조 3년)정조의 후궁 원빈(元嬪)홍씨가 죽자 명인원(明仁圓)이라는 무덤을 영도사의 곁에 조성하게 되는데, 명인원으로 인해 영도사는 왼쪽 등성이 몇 리쯤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이때 사찰이름도 개운사로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운사 창건을 전후한 이러한 내용은 뚜렷한 문헌에 수록된 것은 아니며, '사전(寺傳)' 또는 '사기(寺記)'라는 표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1396년(조선 태조5년) 무학대사가 영도사(永導寺)를 창건하였는데, 이것이 개운사의 전신이라는 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즉 무학대사가 도성 동쪽 5리쯤에 영도사를 창건한 후, 1779년(정조 3년)정조의 후궁 원빈(元嬪)홍씨가 죽자 명인원(明仁圓)이라는 무덤을 영도사의 곁에 조성하게 되는데, 명인원으로 인해 영도사는 왼쪽 등성이 몇 리쯤으로 옮기게 되었으며 이때 사찰이름도 개운사로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운사 창건을 전후한 이러한 내용은 뚜렷한 문헌에 수록된 것은 아니며, '사전(寺傳)' 또는 '사기(寺記)'라는 표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