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지역/호선 | 서울/19880728 | 관리공사 | 10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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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359-8410 | 영어 |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354번지 | ||||
중국어 |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진관동) | 일본어 | 10 | ||||
도로명 | - | 지번 |
진관사는 고려시대 고찰로서 고려의 현종이 대량원군으로 있을 때 12세의 어린 나이로 궁중에서 쫓겨나 머리를 깍고 중의 행색으로 지내면서 삼각산 신혈사에 숨어 있다가 목종 12년(1009년)에 대신들의 몽영으로 왕위에 올랐는데 당시 현종이 숨어있던 신혈사가 곧 진관사였다고 한다.
당시 절의 주지 진관조사가 방에 굴을 파서 현종을 숨기고 침상을 그 굴위에 올려놓고 거처하면서 화를 면하게 하여 신혈사란 이름이 생겼으며 현종 즉위 후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대가람을 짓고 절 이름을 진관사라 하였다 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이 절에 수륙사를 설치하고 물속의 외로운 넋들과 아귀를 위해 법석을 베푸는 재를 올려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다음은 한국관광공사 자료>
진관사는 동 불암사, 서 진관사, 남 삼막사, 북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아 왔다. 진관사(津寬寺)의 연혁은 고려 제 8대 현종(顯宗)원년 서기 1010년에 현종이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서 창건 하였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명령에 의하여 조종선령(祖宗仙靈)과 순국충열(殉國忠烈), 희생당한 고려 왕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춘ㆍ추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장엄하게 베풀어 왔었다.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들을 위한 독서당을 진관사에 세우고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과 같은 선비들을 독서하게 했다고 한다.
한국 동란 때 공비소탕의 일환으로 사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다. 1963년 비구니 진관(眞觀)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30여 년간 복원 불사를 하여 지금의 가람으로 일신 중창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독성각, 나가원, 홍제루, 동정각, 동별당, 요사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에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로는 미륵보살과 제화갈화보살을 모셨으며,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십대 대왕을 모셨으며, 나한전은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십륙나한상을 보셨다.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역사를 자랑하는 진관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일상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면서 오늘도 부처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쉬는날:연중무휴
체험안내:[템플스테이]
휴식형(성인, 가족 대상)
불교문화체험형(성인 대상)
단체형(성인, 학생 대상)
* 어린이 템플스테이
- 일시 : 여름방학, 겨울방학, 특화프로그램 운영시
- 대상 : 초등학교 1~6학년
* 청소년 템플스테이
- 일시 : 여름방학, 겨울방학, 특화프로그램 운영시
- 대상 : 중고등학생
주차시설:주차 가능
유모차 대여 여부:없음
애완동물 동반 가능 여부:불가
신용카드 가능 여부: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