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온천-신례원 새해맞이 선로이설, 그 후 (2) - 장항선 학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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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21:15
2007년 12월 21일은우리의 어머니'장항선'의 경사스러운 날이었다.온양온천-신례원, 주포-남포 구간의 굽었던 허리가 쫙 펴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덕분에 요금이 줄어들고 속도는 빨라지는 등 굉장한 효과가 생기기도했다.하지만, 그 온양온천-신례원, 주포-남포 구간에 있던 '우리'에게는선로 이설이재앙과 다름없는 말이었다.마지막까지 꿋꿋이 지켜주었던 열차가우리의 곁을 떠나버리기때문이다.가뜩이나열차가 어느 순간부터 모두 통과해 버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는데,이제는 더 이상열차마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우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소중한 흔적들을 남긴 채, 결국 2007년 12월 21일로우리는 완전히 버려진 흉물이 되었다.벌써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다행스럽게도 열차만 다니지 않을 뿐 나의 모든 것은 그대로 남아있다.하지만, 언제 내가 갈갈이 찢겨지고 부서질지 모르는 일이다.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나의 모든것을 보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하지만 이제는우리를 지탱해 줬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안간힘을 쓸 힘조차 남아있지 있다.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오후, 세 달 째 편하게 잠자고 있던 내 곁으로 불청객 세 명이 한꺼번에 다가왔다.너무나 오랫만에 사람이 다가온지라 혹시나 나쁜 의도로 다가오고 있는 건지 잠시 의심도 해 보았지만,즐겁게 장난치며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나에겐 세 가닥의 선로가 존재했었다.하지만 어느덧 가장 오른쪽의 선로는 이미 철거를 해버려, 이제는 두 가닥밖에 남아있지 않다.나머지 두 가닥이 걷히고 나면 그 다음 차례는 내 몸뚱아리가 될까.내 모습 자체가 없어진다는 두려운 생각에 오금이 바싹 저려온다.외지에서 일부러 우리를 찾아준 세 일행. 오랫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더없이 반갑기만 하다.먼 곳에서부터 계속 철길을 따라 걸어왔으므로 아마도 신창역에서부터 걸어왔으리라 짐작한다.내 짐작이 맞다면, 이들이 느끼기엔 좀 전에 방문했던 신창역이 나름대로 큼직했던 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것이다.양 끝의 승강장과 함께 역목에 둘러싸여간이역 분위기가 그 어느 곳보다 물씬 풍기는 곳이기때문이다.실제로나의 집코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도 하루에 5대조차 없는 수준이니까.무려 20분 간격으로 다니는 형 '신창역'에 비하면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그러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더욱 간이역으로서 빛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1956년산 레일이 우리 집을 관통한다.나뿐만 아니라 형 신창역과 동생 선장역에도 50년이 훌쩍 넘은 선로가 버젓이 남아있다.하지만 더 이상 이 것은 선로가 아니다.51년동안 한 때 열차가 통과했었던 한낱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역할을 마치고 긴 잠에 빠진 지 벌써 세 달.나와 운명을 같이한 주변 형제들은 아직까지 모든 것이 온전히 남아있지만,난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내심장인 역명판이 곳곳에 쓰레기처럼 널부려져뜯겨나가 있다.원래의 하얀색은 철제판이 흔적도 없이 부러져나간 채 그나마 내 몸 안에 널부러져 있지만,그 위에 새로 덧칠했던 검은색은 여기서 4km 떨어진 형의 집까지 굴러갔기 때문이다.나의 발이었던 승강장마저도 더이상 온전하지가 않다.4년전부터 쓸모없게 된 발이었지만, 내 몸과 마주하고 있는반대편 승강장은부서진 돌 파편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고 그 위를 벌써부터 흙이 채워주고 있다.더군다나 이 쪽으로는 벌써 선로마저 철거되고 있는 상황이다.나의 몸이 하나 둘 씩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그나마 내 몸뚱아리와 붙어있는 승강장은 온전하게 남아있다.비록 내 심장만큼은 온전하지 못할망정, 내 한 쪽 발이나마 아직 무사히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하지만 내 마지막 반쪽마저도 언제 없어질 지는 정말 모르겠다.분명한 것은 머지 않은 미래에 마지막 반쪽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거다.너무너무 무서운 생각들이 내 뇌리를 스친다.분홍색 덧칠을 한 나의 모습이다.일행들 말로는 경의선 능곡역을 쏙 빼닮았다고 하는데,정작 나 자신은 능곡역은 커녕 근처의 형제들 모습조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내 몸이 태어난 것이 어언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이제 이 몸마저 조그만 돌 조각으로 변해버릴 날이 머지 않았다.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후이기에, 아쉽지만 당당히 받아들일 것이다.이제 나라는 존재는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 오히려 옳은 방도인지도 모르겠다.대부분의 역들과는 달리 내 몸은 정말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선로 반대편의 몸 뒷쪽은 대개 역 광장이 나타나기 마련인데,난 오히려 몸 뒷쪽이 낭떠러지 때문에 역목들로 꽉 막혀있다.그래서 나에게 접근하려면 선장역 방면으로 뚫린 조그만 언덕길을 올라와야 한다.내가 봐도 난 정말로 도도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것 같다.선로를 따라오지 않는 이상 이 길이 나에게 찾아오는 유일한 방법이다.이렇게 나무들 사이로 내 모습이 조심스럽게 보이는게 얼마나 도도해 보이는가.아무리 봐도 정말 환상적이다.나에게 올라오는언덕길은 그다지 험한 편이 아니다.이래뵈도 나를 상징하는 굴다리가 그 입구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나보다도 출생을 먼저 한 것 같은 간첩신고 표지판이 나와 함께 이 자리를 꿋꿋이 지켜주고 있다.더불어 내 진짜 심장, 노란색 학성역 표지판도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비록 나의 신체가 하나 둘 씩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난 죽지 않았다.미래를 향해 달릴 수는 없지만,미래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반성할 시간 정도는 가질수는 있다.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반가운 세 손님들이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본다.이 곳에서 몇 십년 간 있었던 나지만, 나조차도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나를 상징하는 마크, '학성역 굴다리' 옆에 버스정류장도 위치해 있다.하지만 하루에 불과 다섯 번 밖에 다니지 않는다.이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지만 버스의 생김새도 가물가물할 정도니까.확실히 내가 있는 곳이 오지이긴 오지인가 보다.여기로 온 일행들도 걸어서 오길 잘했다라는 소리를 연발하고 있으니 말이다.오랫만에 찾아줬던 반가운 세 일행들은 서둘러 짐을 챙기고 선로를 따라 쭉 걸어간다.우리 폐역 형제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하지만 가장 유명했던선장역을 향해.따뜻한 햇살 아래 녹슨 철길도 밝게 빛난다.그들과의 만남은 짧지만 정말 즐거웠다. 앞으로 다시 이렇게 반갑게 찾아줄 사람이 있을까...아쉬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사람들은 우리를 태어나게 했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보살펴주었지만,끝끝내는무관심 속에 비참하게 우리를 버렸다.하지만 우리는끊임없이 절규할 것이다.우리의 형체가 서서히 사라지고 모습이 완전히 없어져버린다 할 지라도,언제까지고 세상을 향해 외칠 것이다.그러면 언젠가는 우리를 알아줄 날이 오겠지.끊임없이 외치면 먼 훗날 우리의 존재가 다시 부각될 날도 오겠지.마음 같아서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던 옛날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만,다시 재조명받는 날이 만약에 찾아온다면, 그 날로 시간을 앞당겨 돌려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