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옛 보령의 중심지 - 장항선 주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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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21:15
보령.충청남도의 유명한해안도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령의 중심지는 '대천'이라는 곳이다.진짜 보령이 위치한 곳은, 대천이 아닌 시내 바로 윗쪽 '주포면'이다.하지만보령시를 대표하는 '진짜 보령', 주포면은 인구가 1,700명밖에 되지 않는 한산한 시골이다.1914 일제시대 군.현 통폐합 이전까지만 해도 보령군의 중심지로서 각종 물산이 모였던 중심지였지만,지금은 인구가 2,000명도 채 되지 않는 몰락한 마을이라는 얘기다.주포역의 위상도 그에 따라 나날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1929년 '보령역'으로 화려하게 태어났지만 보령군의 중심지가 주포(보령리)에서 대천(대천리)으로 옮겨감에 따라,점점 쇠락의 길을 걸어 곧 주포라는 이름으로 변경되고 비둘기호만 정차하는 한산한 간이역으로 바뀌었다.비둘기호에 이어 통일호, 완행 무궁화호가 정차했지만 몰락의 운명을 비켜갈 수 없어,결국 2007년 6월자로 모든 열차가 통과하고 이제는 개량화를 위해 역 자체를 폐쇠시킨 상태다.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사실상의 폐역 상태에 놓인 주포역.역 뒷편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차들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지을 뿐이다.청소-대천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고서 아주자동차학원 정류장에서 내린 후,국도 밑 지하도를 지나 10분 정도 걸으면 저 멀리 주포역이 보인다.명색이 주포역이기는 하지만 주포면사무소가 있는 중심지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실질적으로 비둘기호가 운행했던 시절에도 이용객은 그리 많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주포역 앞은포장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2차선도로와시멘트길이 전부다.역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기는 하지만 이 곳에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 6회 정도.그래서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저 시멘트길 언덕을 넘고지하도를 건너 버스를 탄다.대천시내 바로 윗쪽에 붙어있는 동네지만 의외로 교통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하지만 몇 회 안 되는 버스는 주포역을 나락의 길로 빠뜨리고 말았다.2007년 6월 여객영업을 중단한 이후,역무원은 모두 철수했고 역 구내는 복선화 공사로 모든 것이 파헤쳐졌다.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는 빈 역사 안은 각종 쓰레기들로 너저분하고 어지러져 있고,먼지쌓인 유리문은 자물쇠로 꽁꽁 잠겨있다.어차피 여기에 서는 열차는아무것도 없으니, 역무원이 사실상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열차가 서지 않아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는게 가능했을 것이다.그래서 현재의 주포역은 역이 아니다.건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역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흙으로 덮힌 간이승강장 사이로 부서질 듯 낡은 철길이 지나가던 간이역 시절은,이젠 전혀 흔적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버려진 역사 뒷편으로는 거대한 장벽만이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을 뿐이다.역사에서 역 구내로 내려가는 길 조차 모두 막혀버렸으며,역사와 장벽 사이에는 똥물이 고인 도랑이 있어 아예 다른 곳에서만 공사차량 출입이 가능하다.주포역은 그래서 한없이 울고있다.한없이 처량하게, 한없이 슬프게, 때로는 한없이 야박하게 바로 앞의 장벽을 바라본다.모든 것을 망쳐버린 저 원흉이 정말 원망스러울 것이다.도무지 역의 흔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고,높다란 장벽으로 가로막힌 주포역은 현재로서는 '임시폐역'일 뿐이다.하지만 아담한 풀밭 사이로 보이는 역사는 아름답게만 보인다.마치 유럽의 자그마한 별장이라도 온 듯... 한산한 그리움이 묻어난다.주포역에서 남포역까지 선로가 곧게 펴지면서 기존의 선로는 자갈밭으로 변하고,대신 저 멀리 쭉쭉 뻗은 고가 교각이 기찻길이 되었다.수많은 추억들을 싣고 구불구불 기어갔을 기차들도,이제는 쭉쭉 뻗은 선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갈 것이다.그 세월 앞에, 속도 앞에 차마 적응을 못한 무수히 많은 간이역들은 버려질 뿐이다.한 때는 보령을 대표하는 거대역이었던 주포역조차 버려진 신세가 되었으니,상실감과 허탈감 등등 여러감정들이 뒤섞여 묘한 여운이느껴진다.'속도' 때문에 기찻길을 개량했다고 말로는 실컷 떠들지만, 정작 속도는 오히려 더욱 줄어들었다.1차 개량으로 무려 8km 가까이 단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요시간의 차이는 아무것도 없었다.2차 개량때도 오히려 소요시간이 늘어나지 않기만을 바래야 하는 처지이다.길이가 단축되었음에도 소요시간이 같다는 것은,그만큼 같은 거리를 지나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뜻.어쩌면 '속도'라는 미명 아래 한국 철도를 단지 과시하기 위해서 큰 돈을 들여가며 개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정말 그런 의미라면,버려진 수많은 간이역의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낄 것이고,큰 역이었던 주포역의 입장에선 더욱더 어처구니없고 허망할 것이다.정말 속도를 위한 개량인지, 아니면 단순한 과시를 위한 개량인지 때로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