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의 수줍은 만남 - 장항선 원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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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21:15
장항선은 '곡선의 철길'이라고 불린다.시작점부터 종점까지 쉴새없이 야트막한 산들을 빙빙 둘러가기 때문이다.구릉 지대로서 대체적으로 평탄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쏟아지는 곡선들.매력이 느껴지는 황홀한 풍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하지만 80년만의 대개혁으로 더 이상 장항선에서 곡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이미 천안~신성, 주포~남포, 간치~대야구간은 쭉쭉 뻗은 신선으로 철길이 옮겨가는 상황이고,나머지 신성~주포, 남포~간치 구간도 언제쯤 곧게 뻗은 신선으로 이설할 지 모르는 일이다.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계획이 없는 곳인지라, 여유로운 풍경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원죽역과 비슷한 처지의 선장역은 이미 최후의 말로를 다했고,오가역, 기동역, 삼산역도 올해를 끝으로종말을 예고하고 있다.그 때문에 원죽역은 더욱 뜻깊은 역이다.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쉴 간이역이기에,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다.끝없이 뻗은 철길, 중간의 건널목 너머로 펼쳐지는 황홀한 파노라마...시골의 아름다운 정경과 함께하는 장항선은 정말 멋진 철길이다.그리고 그 철길의 중심점에 원죽역이 한가로이 숨쉬고 있다.원죽역은 전형적인 간이역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사진에서 보이는 허름한 승강장과,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넘어갈 듯 기울어진 나무.이 것이원죽역의 전부다.비가 올 듯한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원죽역의 버려진의자엔 먼지가 거의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먼지가 수북히 한가득 쌓일 것이다.먼지가 하나 둘 씩 쌓여갈 수록 애처로운 마음도 그만큼 쌓여만 간다.2007년 6월 1일 이후로 이 곳에 정차하는 열차는 단 한 대도 없다.이 곳에 열차가 정차했던 흔적이 초라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그나마 이 것도 언제쯤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일이다.그렇기 때문에, 비록 열차는 서지 않지만오히려 가치가 더욱 큰 역이다.열차가 더 이상 서지 않게 된 것도 벌써 1년.돌을 일렬로 세워놓은 허름한승강장은 벌써부터 무너져내리고 있었다.조금만 더 지나면 자연과 완전히 동화되어 마치 하나의 유적처럼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그렇게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최후를 마감하는 폐역이 되어버리는 것이다.비둘기호가 서민의 발이 되어줬던 시절,동네의 아낙들은 마을 중앙에 있는 역에서 열차를 종종 기다리곤 했을 것이다.하지만 서민의 발이 통일호로 바뀌고 무궁화호로 바뀌고 나서는,엄청나게 뛰어버린 요금 때문에 더 이상 열차를 타기가 겁이 났을 것이다.그래서점점 열차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주민들에게도 버림받은 무수한 간이역들은 '영업중지'라는 처방을 맞았다.그나마 화물이나 신호장의 업무라도 하는 곳들은 아직까지역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원죽역같이 오로지 승객에게만 의존했던 간이역들은 처량한 최후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모두가 떠나버린 역은 참으로 쓸쓸하고 처량하다.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갈망하듯 먼 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에 젖는다.지금도 누군가가 찾아와줄 것만 같지만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아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할 수 있었다.사람이 많은 곳에 아름다운 풍경이 고이 간직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사람이 북적대는 도시보다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골의 풍경이 훨씬 수려한 것처럼,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반비례하는 것 같다.저 뒤의 기울어진 원죽역 마스코트가 다른 나무들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놓는다.그리고 수많은 가로수 사이로 원죽역이 모습을 수줍게 감추고 있다.원죽역 사방으로 마을이 둘러싸고 있지만 정작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사람은 없을지언정, 역 양 옆으로는 아름다운 자연의 미(美)가화려하게펼쳐진다.야트막한산과 군데군데 펼쳐진 조그만 벌판의 조화가 아름답다.장항선의 전형적인 풍경이지만,어째서 원죽역에서는 같은 풍경이라도 더욱화려하게 보일까.원죽역이 다른 역들보다 더욱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어서 그런 것일까.원죽역을 지나는 새마을호도 아름다운 경치에 홀딱 반한 것인지, 빠른 속도를 내지 않고 꾸물꾸물 기어간다.자연 속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천천히 느린 속도로, '인간의 마을' 광천을 향해 기어간다.철길이 없어지는 날까지, 자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수줍은 만남을 계속할 것이다.언제까지라도 조용히... 그리고 수줍게...자연과의 아름다운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