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이 들어가지 않는 첫번째 역 - 중앙선 지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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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21:15
한 때는 양근리(양평읍)과 함께 양평의 두 기둥 역할을 했던 지역.하지만 용문에 그 역할을 모두 넘겨준 채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로 남아있는 지역.그런 한적한 시골에서도 마을외곽에 치우쳐져 있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역.그래서 더욱 예쁘고 사랑스러운 역.중앙선 복선화가 이뤄지기는 하지만, 전철이 들어가지 않는 첫번째 역이기도 하다.과연 복선화가 용문까지 완공되어 용문에 전철이 드나들게 된다면, 지평역은 어떤 갈림길에 서게 될까.'지평'이 한 때 지평현(縣)의 중심지였던 곳이어서 나름대로 입지도 탄탄한 동네인데,용문과 한 정거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전철이 들어오지 않는다.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군내버스로 용문까지 나간 뒤, 무료로 전철로 환승하게 될 지평면 주민들.얼핏 보면 지평면 주민들도 중앙선 전철의 혜택을 입는 수혜자가 될 수도 있겠다.하지만 바로 코앞의 지평역으로는 전철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저 멀리 용문까지 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어찌 보면 코앞의 철도역을 두고 먼 곳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지평역 앞은 굉장히 조용하고 한가롭다.도로 앞으로는 자가용 한 대 지나가는 것 조차 보기 쉽지 않다.두 도로가 교차하는 지평면 중심지와 약 700~800m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꽤 분주한 면 중심지와는 달리 이 곳은 무척이나 조용하다.주변엔 오직 논밭과 민가 몇 채가 전부인 이 곳에서,언덕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지평역이 나타난다.공교롭게도 역 입구에 바로 버스정류장도 자리잡고 있다.비록 이 곳으로 다니는 버스가하루에 몇 대 없기는 하지만.지평역앞 언덕에서 내려다본 지평면 풍경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한가하다.명색이 6천명 인구가 몰려사는 '면'의 중심역인데, 이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중심지와 도보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어 이용이 불편하다.설상가상으로 하루에 다니는 열차도 몇 되지 않으니...지평면 주민에게는 차라리 용문까지 나가서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지역 주민에게조차 외면받는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68년의 세월동안 자리를 지키며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다.역명판을 달을 만한 공간도 없어 천정 위에다가 겨우겨우 설치한 역명판이귀엽다.여객과 교행을 주로 하고 간간이 화물취급도 하는 엄연한 '보통역'이지만,지금의 모습은 어김없는 간이역, 그 자체다.지평역 내부는 2평이나 될까말까할 정도로 좁다.열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사람들로 꽤 북적이는 조그만 공간.짧은 시간이지만 이 곳에서 사람들의 정이 오간다고 생각하니,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열차를 기다리는동안 심심하지 않게 책들도 수북이 꽂아놓았다.하지만 정작 이 곳에서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의도는 좋았지만 그저눈요기전시용으로 전락해버린 책들이 가엾어 보인다.지평역 정차열차는 왕복 5회로, 간이역에 비교적 가까운 수준의어중간한 정차 횟수다.통일호 시절부터 지금의 정차횟수를 계속해서 유지했다가 2006년 개편때 왕복 3회까지 줄었지만,최근 들어 열차 정차횟수가 다시 늘어났다.하지만 절반이 넘는 열차가 특정 시간에 몰려있어 이용하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정차횟수가 이렇게도 적으니, 지평면 주민들이 코앞의지평역을 외면하고 용문역을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사람들의 외면은 지평역의 입지를 초라하게 만들었지만,그 덕에 지금의 간이역다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마을 규모는 오히려 더 작은 '양동'의 경우, 아담한 역사와 수려한 경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상대적으로 간이역의 분위기는 잘 살지 않는 삭막한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역으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린 대신 일부를 새로 얻어낸 셈이다.'지평'이라는 동네는 야트막한 산지를 사방에 끼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하지만 산세가 상당히 오래되어 산의 형상을 상당히 잃어버렸기에,섣불리 산악 지형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물론 이 곳이 평야 지역은 더더욱 아니다.지평역은 그렇게 산도 들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역이다.지평역의 경우는 역사 자체보다는 오히려 부속 건물들에 눈길이 더 돌아간다.지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로운 부속 건물과,예전에 소화물 취급을 했었던 낡디낡은 대한통운 건물이 훨씬 특색이 넘치는 건물이다.특히 구 대한통운 소화물취급건물은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보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오래된 역사에 오래된 부속건물처럼, 지평역의 모든 것들은 오래되었다.아니, 오래되었다기 보다는 세월의 흔적이 새로 설치된 것에까지 구석구석 스며들었다고 봐야겠다.승강장과 역명판 모두 그리 오래된 것들이 아니다.설치한 지 이제 고작 10년을 갓 넘은 빳빳한 새 것들이다.하지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았나.결코 짧지 않은 십 년의 세월 동안 모진 비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살아오고,수없이 많은 매연을 들이키며 이 자리를 지켜야 했으니 온전히 남아있을리가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래된 듯한 묘한 느낌을 선사해준다.설치한 지 오래되지 않은 기둥에는, 이미 만들어진지 25년이 지난 구형 파란 역명판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이 것 또한 어디서도 느끼기 힘든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이 것 또한 '지평역'이어서더욱더 오묘한 분위기가 가중되는 것일테다.고요한 적막을 깨고 쿠궁쿠궁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무궁화가 쏜살같이 진입한다.그리고는 교행을 위해 잠시 승강장에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점점 더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서 단선 철도는 '양보의 미덕'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서로가 쓸데없이 충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자 제각기 갈 길을 위해 서로 양보한다.그리고는 다른 한 쪽이 앞길을 비켜줄 때에서야 출발한다.단선철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심한 배려. 복선철도에서는전혀볼 수 없는 풍경이다.중앙선이 새련되게 모습을 바꾸면, 단선에서만 볼 수 있었던 배려와 양보의 미덕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용문역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할 수 밖에 없었던 지평역의 운명도,머지않아 환골탈태할 중앙선 복선철도의 운명과 같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