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모르는 역, 그래서 더욱 안쓰러운 역 - 중앙선 원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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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7 21:15
중앙선의 두 거대역, 양평역과 용문역 사이에 끼어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역.1940년 4월 영업을 시작해 중앙선과 생사고락을 함께했지만,양평군의 대표역 양평역과 홍천, 인제, 속초로 넘어가는 관문 용문역에 샌드위치처럼 끼어,보통역이지만일찌감치 매표업무를 중단하고 하루 왕복2회완행열차만 정차하는 초라한 역이 되고 말았다.화물취급도 하지 않고, 여객취급도 굉장히 미미하다.오직 교행업무에만 의존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양평과 용문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라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하지만 예전부터 사람들의 관심 밖에 벗어났던지라 더욱 아름다운 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어디가 승강장이고 어디가 풀밭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풀이 무성한 승강장.뒤엔 자그마한 야산, 앞엔 너른 들판을 낀 아름다운 전원적 풍경.서울근교에 역무원이 근무하면서도이렇게 아름다운 역이 어디에 또 있을까.원덕역의 흙길을 걸으면서 잠시 고뇌에 젖는다.마치 국수역에게 먹을 것을 잔뜩 먹여 몸을 뚱뚱하게 불린 듯한 모습이다.같은 중앙선에 있는 만종역과도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빨간 벽돌에 파란색 기와와 역명판.왠지 안 어울려 보이지만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잘 어울린다.국수역 전 건물보다 훨씬 뚱뚱하듯이, 내부의 모습도 훨씬 뚱뚱하다.하지만 국수역보다 드나드는 사람이 훨씬 적고, 정차하는 열차도 거의 없어원덕역의 맞이방은 24시간 잠잠하다.큼직한 정사각형의 원덕역 역사 내부에서는 고요함과 적막함만이 졸졸 흐른다.이미 1996년부터 매표 업무를 중지했던 원덕역.빛바랜 승차권 차내발권 안내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인다.이 곳으로 전철이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인지 매표소에 붙여진 수도권 전철노선도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청량리방면으로, 안동방면으로 각각 2회씩 정차하는 역.그나마 18시 34분청량리행 열차를 제외하고는 모든 역에서다 서는각역정차 열차만이 정차한다.원덕역 바로 앞은 논 뿐이고, 그 옆으로 민가 몇 채가 전부인 동네기 때문에,사실 열차가 정차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원덕역의 승강장은 제대로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은 흙길.흙의 촉촉한 촉감을 느끼면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려본다.여기가정말로 승강장인지, 시골 흙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바로 내년에 복선화가 완료되어 전철이 들어올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원덕역의 현재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충격'을 받을만큼 역 곳곳에 자연스러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중앙에 본선이 있고, 양 옆으로 대피선이 있다.구내도 꽤 넓고 일찌감치 전철화가 완료되어 전차선이 철길을 둘러싸고 있지만,전철화가 되지 않은 단선 선로보다오히려아름답게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이미 자연과 한 몸이 되어버린 녹슨 철길 옆으로,수시로 열차가 지나가는 삭막한 녹슨 철길 옆으로,예쁜꽃이 활짝 모습을 드리운다.하루에도 수십번씩 생명을 위협받는 철길인데도,열차가 그렇게도 좋은지 철길을 향해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다.'전원주택' 옆에서는 그 어떤 것들도쌩썡 지나가는 열차가무섭지 않나보다.하찮고 조그만 꽃 하나조차도, 열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역목들과불그스름한 승강장.더도 말도 덜도 말고 이 정도로만 같았으면 좋겠다.내년 완공예정의 복선철도도 정확히 이 곳으로 지나가지만,아직까지도 아무런 공사가 시작되지 않아 전원적 풍경은 그 빛을 더한다.중앙선 전철화가 완공된 1971년부터 세월의 흐름을 함께한 전기기관차.남동쪽에서 화물을 한가득 싣고 서울로 유유히 걸어들어온다.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역을 조심스레 빠져나간다.열차가 빠져나간 원덕역은 다시 고요에 둘러싸인다.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철길 건너 승강장에서 바라본 원덕역은,누가 뭐라할 수 없는 완벽한 '전원주택'이다.고요함, 한적함, 아름다움.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완벽한 결정체이다.표발권을 중지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안내판은,이 곳을철길 건너 2번홈은 안동, 강릉방면 승강장으로 이용하라고 안내되어 있다.하지만현재는 역과 붙어있는 승강장만 이용하고 있어, 이 곳은 이미 버려진지 오래되었다.아직 5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풀들이 자기들의 키를 마음껏 뻗어낸다.이미 자연과 한 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조그맣고 하찮은한 줄기 풀처럼 보일지 몰라도, 굉장히 억세고 강한 생명이다.특히 수시로 열차가 지나가는 철길 옆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같은 자연이라도 전부 같은 자연이 아니고, 같은 생명이라도 전부 같은 생명은 아니다.어디에 형성되느냐에 따라 하찮은 풀 하나까지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만들어버린다.저마다 제 키를 키우려고 경쟁하는 풀들 사이로 원덕역 역명판이 쓸쓸히 햇빛을 쬐고 있다.어쩌면, 이 것이 원덕역 역명판이 맞는 마지막 봄이 될지도 모르겠다.아직은 조용하기만 한 곳이지만, 언제순식간에 초토화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08년 말 국수역까지 복선화가 완료되는 그 순간,원덕역의 자연스러움도 모두 끝장난다는 것이다.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덕역사가 역목 뒤로 조심스레 숨은 채해맑게 웃고 있다.이미 원덕역 앞의모든 역들이처참한 종말을 맞았다는 사실을모르고서...살짝 얘기를 꺼내보니,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며 손사래를 친다.종말이 머지않았음을 모르고 해맑고 순수하게 웃기만 하는 원덕역.종말을 언급해도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거라 생각하고 거부하는 원덕역.너무나도 순수한 역이기 때문에전원풍경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더욱 안쓰럽게만느껴진다.서울 근교의 아담한 전원주택, 원덕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