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槽(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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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22:56
한자명칭 | 석조 | 국적-시대 | 한국-백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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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석-화강암 | 용도 | 주-생활용품-기타 | ||||
크기 | 전체높이 157,지름 142 | 출토지 | 충청남도-부여군-부여읍 관북리 | ||||
소장구분 | 국립1-부여-부여 | 소장품번호 | 367 | ||||
세부번호 | 0 | 지정구분 | 보물 |
이 석조는 I자형 받침대와 반구형(사발형)의 화강암제 석조로서 용도는 명확히 알수 없으나 부처에게 공양하는 연꽃을 심었던 용기로 전해진다. 현 받침대는 양호하나 수조는 구연부가 대각선으로 박락된 상태이고, 둥근 기면 일부에도 박락된 상태이다. 이 수조는 1석으로 된 대좌위에 놓여진 석조인데, 대석이 뚜렷이 상·중·하대의 형식을 갖춘 '工'자 모양의 받침대위에 위쪽이 잘린 공 모양의 석조가 놓여있다. 하대는 수직으로 된 측면에 아무런 조각이 없고 간주형을 이룬 중대도 그러하며 상대의 측면에도 또한 아무런 조식이 없이 다만 상면에 일반적인 원형 받침대를 조출하여 석조를 받고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대석의 형태는 장식이 전혀없이 간결한데 가야지방에서 출토되는 토기중의 일례와도 같은 점에서 흥미가 있다. 석조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인 장방형과는 달리, 원형으로서 이 양식은 백제시대의 기본형이다. 백제시대의 석조로는 공주박물관에 원형 석조 2좌가 보존되어 있는데, 이 부여석조는 공주의 것과는 달리 사발형으로 되어있다. 즉 구연부가 약간 오므라들면서 내·외면이 둥글게 圓弧를 그리어 저면은 편평한 듯하나 완곡한 편이다. 외면 기벽에는 종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數條의 線文을 陽刻하였는데 원만한 곡선과 소박한 이 석조가 잘 어울려서 품위를 더 한층 높이고 있다. 석조 표면에는 '大唐平百濟國碑銘云云...'의 불분명한 數行의 음각명이 있는데 이것은 백제멸망시에 唐軍이 百濟를 平正했다는 뜻의 글을 새기다가 그만둔 흔적으로 역사의 한 모습을 살필수 있다. 工자 모양의 받침 위는 약간 오목하여 석조의 둥근 밑과 잘 맞도록 되어 있는데, 일제때 일본사람들이 받침대를 거꾸로 놓았던 것을 새로운 박물관으로 옮기면서 바로 잡아 놓았다.